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슬라보예 지젝 (문단 편집) === 반론 === >홍준기는 지젝의 공산주의 가설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만, 그가 사회 민주주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주장 이외에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젝 같은 ‘공산주의자’가 “공허한 환상”을 부추기면서 가장 현실적인 사회 민주주의를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기의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편견에 의지해 지젝을 비판한다는 핑계로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논의 자체를 마음대로 왜곡하고 있어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br][br]무엇보다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역사적 공산주의 국가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공산주의 이념을 구분하지 않고 지젝 또는 바디우의 공산주의 가설을 역사적 공산주의 국가 또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와 동일시하는 태도이다. 오해와 달리, 지금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산주의 가설은 과거에 실패한 역사적 공산주의를 복귀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서울 컨퍼런스를 위해 방한했던 지젝과 바디우가 입을 모아 북한을 비판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홍준기는 지젝을 표적으로 삼고 있지만, 1980년대 중반 이런 논의를 처음 제기하고 시작했던 이는 가타리와 낭시였다.(1)[br][br]가타리가 네그리와 함께 집필한 <우리 같은 공산주의자>와 낭시가 쓴 <무위의 공동체>는 스탈린의 국가주의에 포획된 공산주의의 실패를 돌아보고, 거기에서 공산주의를 발현시킨 이념(이상)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고 요청했다. 특히 낭시가 제기한 새로운 공동체의 의미는 “생활 속의 공산주의 개념과 실천”이라는 ‘비동일적 현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동일적인 것이란 이미 형성되어 있는 동일성이나 입장에 대한 거리 두기를 의미한다. 이처럼 공산주의를 새롭게 생각하자는 요청은 지젝만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아직까지도 ‘철없이’ 공산주의를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지젝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면 그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 >[[이택광]], <지젝 오독은 한국 사민주의자들의 반정치적 경향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월 9일)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9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